우수강의교수상 수상자 특별 인터뷰 – 전혜림
GLC는 교육부문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소속 교강사분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GLC 전공 및 교양 교육의 질적 제고를 도모하기 위하여 GLC 우수강의교수상 제도를 마련하였다. 2020학년도 2학기부터 도입된 GLC 우수강의교수상 선정기준은 강의평가 결과를 토대로 수강인원별 평가 점수를 보정하여 종합적으로 심사한 후 GLC 운영위원회에서 최종 선정 대상자를 추인한다. 2021학년도 1학기에 우수강의교수상을 수상하고, 매 학기 TOP 3에 들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전혜림 교수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아보았다.
1. 어떤 과목을 강의하셨는지 과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양문명의역사>와 <시각문화읽기>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서양문명의역사>는 서구에서 근대민족국가와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업인데, 서구의 근대 정치/경제/사상 혁명을 중심으로 홉스나 로크 같은 정치철학자, 애덤 스미스와 같은 고전경제학자, 볼테르와 칸트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주장을 주요 내용으로 다룹니다. <시각문화읽기> 수업은 예술 개념의 변천사를 통해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수업입니다. 학기 후반부에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우는데, 역사적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실패를 통해 예술의 실천적 의미에 대해 보다 깊게 고민해보기 위함임니다.
2. 학생들이 교수님 강의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강의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고등학교 때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을 배우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 칸트의 ‘계몽’이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은 그 내용이 아주 흥미로운데, 이런 내용들은 대학 수업이 아니면 접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제 생각에 많은 학생들이 제 강의(내용)에 매력을 느끼기보다는 저의 피드백에 만족해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선생에게 바라는 것은 물론 만족스러운 강의도 있겠지만 그것 못지않게 자신의 수업에 대한 이해, 결과물, 질문 등에 대한 피드백인 것 같아요.
3. 교수님의 학창시절 희망 진로는 무엇이었나요?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데, 학부 시절에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능도 없고 용기도 없어서 곧 포기했고,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 교수님의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학부 시절엔, 이런 얘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학교에 잘 가지 않았습니다. 수업도 빼먹고 만날 극장(현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영화를 봤어요. 4학년 때는 독립영화협의회라는 단체에서 단편 영화도 만들었고요. 학부 때 하도 (학과) 공부를 안 해서 제가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어이없어 하셨어요. 대학원(석박사) 시절엔 반대로 전공 공부만 했어요. 도서관, 강의실, 집을 쳇바퀴 돌 듯 돌았고, 그때는 도서관이 집보다 편했습니다. 석사 시절엔 도서관 문 닫았다고 집에 와서 운 적도 있는데, 아마도 도서관 건물 자체에 애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
5. 교수님도 학창/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스승이나 선생님이 계신지요?
정말 많은 선생님들이 떠오르는데, 석사 시절 지도교수님, 제 박사 논문을 심사해주셨던 다섯 분 선생님들, 강의실 밖에서 벤야민 세미나를 이끌어주셨던 독문학자 조만영 선생님, 헤겔 세미나를 이끌어주셨던 철학과 김옥경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박사 과정 때는 공부하는 게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던 적도 있었는데, 선생님들과의 세미나가 너무 재미있어서 도망치지 않고 졸업했습니다(물론 도망칠 곳도 없었지만요).
6. 교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노동’입니다. 노동은 굉장히 근대적인 개념인데, 전자본주의적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구별하는 기준이기도 하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경구가 그걸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제가 가치로서 생각하는 노동은 마르크스나 아렌트가 비판한, 삶의 필연성과 재생산에 종속된, 돈이 되는 활동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헤겔적 의미의 노동, 즉 자기(self)를 구성하는 인간의 이론적/실천적 활동, 나를 도야(Bildung)하는 계기로서의 모든 활동을 말합니다.
7.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보람있던 순간과 가장 힘든 순간이 궁금합니다.
보람을 느낄 때는 제가 영업(?)을 잘했다고 느낄 때입니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재미있어 하고, 더 알고 싶어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늘 듣는 얘기가 요즘 학생들은 철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없다는 건데,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때의 기쁨이 있습니다. 힘들 때는, 학생들이 수업에서 아무 반응도 보여주지 않을 때입니다. 선생이 정말 좋은 직업인 게,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마음껏 떠들 수 있거든요.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없을 때는 몸과 마음이 다 지칩니다.
8. 잘 가르치는 교수, 좋은 강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자기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열심히 수업하는 선생이 잘 가르치는 선생이 아닐까 합니다. 대개는 연구에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수업도 즐겁게 하시더라고요(이 경우, 연구와 강의내용이 일치해야 하겠지만요).
9. 학생들에게 어떤 교수가 되고 싶으신가요?
박사 과정 시절 은사님이 선생은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 달리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직업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선생이 되어 학생들을 몇 년간 가르치니 이제서야 그 말씀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영혼에 상처주지 않는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10.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예전에 제 수업을 들었던 두 여학생이 이번 여름방학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정말 멋진 계획이죠? 공부든, 여행이든, 연애든… 뭐든 후회없이 즐겁게, 열심히 하길! 여러분들의 젊음과 패기가 부럽습니다!!!